스위스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었는데, 그 사진첩에 담지 못한 사진들을 보다가 꽤나 기억에 남는 사진들이 많아 한 개 더 만들었다.
유럽 여행 이후 5년이 지나고, 대학원 생활도 끝나고, 다시 꼭 가고자 했던 스위스로 향했다.
폴란드에서 한 번 갈아탔는데, 환승 기다리면서 처음으로 이름이 불렸었다. 여유롭게 화장실 갔다가 오고 있는데 어눌한 발음으로 내 이름이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. 처음엔 뭔가 했는데 몇 번 들어보니 내 이름이었다. 결국 마지막 승객으로 비행기에 탑승.
비행기는 내가 탔었던 비행기 중 가장 작았었다. 앞에 있던 승객에게 스위스 가는 거 맞냐고 물어봤다. 맞다는 대답을 듣고 안도감에 4시간 딥슬립.
취리히에 도착하고, 숙소로 가기 위한 트램을 탔다. 긴 거리가 아니었기에 금방 도착하겠지 했는데 내가 가려고 했던 정거장이 나오지 않았다. 지도를 켜보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.
알아차리자마자 바로 내리고 다시 돌아갈 트램을 찾고 있었다. 그러던 중 주변을 보다 5년 전 누워서 홀로 쉬었던 공원이 눈에 띄었다. 다시는 못 볼 거 같았던 동상과 함께.
별거 없는 그냥저냥 공원이었지만 스위스에 진짜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.
취리히의 첫 식사, 말스테이크였다. 에어비엔비 숙소에 짐을 풀고 호스트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근처에 밥 먹을 곳을 추천받았다. 그리고 소개받았던 스테이크 집. 고기는 언제나 옳다. 뜨거운 철판 위 레어 말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맛났었다. 한 잔의 맥주와 함께 근사하고도 비싼 저녁을 보냈다.
스위스 물가는 미쳤다.
천천히 숙소로 돌아오는 길. 시간을 맞춘건 아니지만 멀리서 구름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. 스위스 사람들에겐 별다를 거 없는 보통의 노을.
멘탈이 살짝 나간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다음 목적지 열차를 탔다. 다음 목적지는 스위스. 멘탈이 나갔지만 뭐 어쩔 수 있나라는 해탈한 상태가 되었다.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란 생각이 이때부터였나 보다. 그런 상태로 기차를 타고 가다 창 밖을 보니 뷰가 환상이었다. 물 색깔도 너무 이뻤고 그 멀리 있는 산까지 너무 멋져 보였다. 이래서 스위스스위스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. 한참을 그렇게 구경하니 어느덧 목적지인 인터라켄에 도착.
인터라켄은 정직하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호수 두개 사이의 동네이다. 호수 색깔은 하늘색과 에메랄드색 그 사이 어디쯤 색깔. 숙소로 향하는 길 풍경도 너무 멋졌다. 길 가다가 사진 찍고, 잠시 구경하고.
숙소에 짐을 두고 나왔다. 나오면서 길가다 만난 래프팅 홍보하는 사람한테 가서 래프팅을 신청했다. 190유로라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인터라켄 풍경에 래프팅은 재밌을 거 같아서 무리했었다. 예약을 하고 간단한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서 잔디밭 근처로 갔다. 좋은 경치와 별로인 점심. 마침 사간 콜라는 바닐라 맛이었고 정말 맛없었다. 콜라는 오리지날이지.
간단하게 점심을 챙기고 걸어 다니다가 산 위로 올라가는 열차를 발견했다. 산 위로 가는 열차라니. 바로 가서 타보기로 했다. Harder Kulm이라는 곳. 급한 경사를 오리는 열차도 신기했고 산 위에서 내려다볼 생각에 신났었다. 작은 열차는 아래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내려다보는 뷰는 역시 좋았다.
왼쪽 호수, 오른쪽 호수도 보이고 그 사이 인터라켄이 보이고. 역시 경치는 위에서 아래로 봐야 제대로 보는가 보다. 낮풍경 중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. 이쪽에서 보고, 저쪽에서도 보고. 그 산 위를 둘러보다 미끄럼틀도 있길래 한 번 타보고. 훗 날 찾아갔을 땐 없었지만 생각보다 재밌었던 미끄럼틀이었다.
한참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서 숙소에서 수건 하나 챙기고 래프팅하러 향했다. 잔디밭에서 픽업하고 래프팅 하는 장소로. 회색깔 강에서 했던 래프팅. 한국에서 1번인가 2번인가 했었는데 물살이 세서 그런지 더 재밌었고 주변의 경치는 이국적이라 더 신기한 경험이었다.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. 1시간 정도 래프팅하고 가게에서 빵과 치즈, 그리고 맥주를 줬다. 그 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. 별 다를 거 없는 빵과 치즈 덩어리에서 잘라 준 치즈 조각, 그리고 이름도 기억 안나는 맥주였지만 물놀이 이후 허기진 상태에서 먹었던 그 맛은 진짜 환상이었다. 정말 맛깔난 액티비티를 즐긴 느낌. 이 느낌을 잊을 수 없어 훗 날 또 했었지.
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이 밝았다. 친구가 일어나지 않아 혼자서 아침 산책을 했다. 거리도, 동네를 가로지르는 강도, 약간 쌀쌀했던 바람도, 물에 비치는 햇살까지 그 모든 분위기가 좋았다. 지도도 없고 해서 간단히 한 바퀴 돌아봤던 산책. 뭐든 안 좋을까. 인터라켄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시 꼭 와야겠단 다짐을 했었다. 야간열차를 잃어버린 탓에 취리히로 빨리 향해야 했다.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아서 그 다짐이 세게 남았다.
취리히에 도착하고 야간 열차를 끊고 할 게 없어 공원에서 그때까지의 여행 정리를 했다. 1/3정도 지난 지점. 아직 좀 남아서 길긴 길구나라는 생각과 1/3이나 지났구나라는 아이러니한 생각과 잃어버린 카메라 생각까지. 그렇게 쉬다가 역 근처로 다시 왔다. 취리히에 있는 강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. 한강에서는 이런 사람이 없는데 신기했다.
거기다 강에 줄을 설치해서 외줄타기하는 사람들을 발견. 참 별의별걸 다하는 구나라는 생각과 재밌게 하고 싶은걸 잘 즐기네란 생각이 들었다. 한참 구경하면서 떨어지면 같이 아쉬워하고 잘하면 계속 구경했다. 그러다 다시 길을 거닐고 강가 근처에서 우리도 발을 담가 쉬기도 하고. 모든 게 유별나게 자유롭고 좋아 보였던, 정말 다시 오고 싶었고, 다시 와야겠다 다짐을 했던 스위스였다.
우리가 타야 했던 건 야간열차였기에 적당한 식량을 사서 역으로 향했다. 짧은 스위스라 너무 아쉬웠지만 뭐든 아쉬움이 좀 남아야 여운이 가지. 그렇게 우린 야간열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체코, 프라하로 향했다.